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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국제관악제 발자취 #1 클라리넷 소녀 이야기

작성일
2021-06-18
작성자
admin
조회
1486

  1102. 이승만 대통력 내외와 소녀.jpg

 

 

 

6·25전쟁은 제주 관악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온 계기였다.

 

당시 제주도는 가장 안전한후방기지로 인식되었다.

 

195010월 유엔군의 지원으로 서울 수송동에 민간 보육원으로

 

설립된 한국보육원이 제주로 본거지를 옮겼다. 같은 해 12월 중공군의 참전에 따라

 

14후퇴를 앞두고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 철수를 결정함에 따라 고아 1,000여명이

 

중공군의 포로가 될 위협에놓인 것이다. 주한미군 제5공군의 헤스 대령이 주도한

 

장난감 자동차 작전덕분에 C-47 수송기 15대에 나눠 탄 907명의

 

원생들이 제주에 무사히 도착했다. 유인자여사도 이때 함께 제주에 도착했다.

 

제주농업학교 교정(현재의 LH한국토지주택공사 제주지사)의 폐건물에 자리 잡은

 

한국보육원은 195512월 서울 휘경동으로 돌아갈 때까지 제주관악 역사의 큰 획을 그었다.

 

 

 

클라리넷 소녀사진은 지금도 제주국제관악제 조직위원회

 

사무실에 걸려있다. 볼 때마다 제주 관악의 뿌리를 떠올리자는

 

취지에서다.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 한국전쟁 직후 전쟁고아들로 구성된

 

한국보육원을 방문했을 때 환영음악을 연주하던 장면이다. 현재 국가기록원이 보유한 사진은

 

2009년 제주도가 발간한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1990-2006)’에 실리면서 눈길을 끌었다.

 

유인자 여사도 다른 전쟁고아들과 함께 군용기를타고 제주에 도착했다.

 

한국보육원에는 고아 1,000여명이 거주했는데 이 가운데 40명이 밴드부원으로 활동했다.

 

그에게 클라리넷이라는 악기를 선물한 것도 길버트 소령이다.

sds자산 4.png

 

 

고아들은 함께 음악을 연주하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전쟁의 상처를 보듬었다.

 

유 여사는 제주여중을 졸업한 뒤 195511월 한국보육원이 제주시 전농로에서 서울휘경동으로

 

이전하면서 다른 고아들과 함께 제주를 떠났다. 서울대 기악과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뒤

 

악기를 만져본 일이 없었다. 언론 보도를 접한 자녀들이 선물한 클라리넷을 다시 잡고 연습한 끝에

 

매기의 추억을 연주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제주도는 어린 시절 포근하게 감싸주었던 어머니의

 

따뜻한 품속과도 같은 존재다

 

 

 

 -  『섬,그 바람의 울림 제주국제관악제 25년 』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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